[다산 칼럼] 400조 슈퍼예산 졸속심사 우려된다

입력 2016-11-08 17:26  

처음으로 400조원 넘은 예산편성
쪽지예산 더해 정략적 심의 우려
침체된 경제 살리는 조정 이뤄져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엊그제 연말 경제인 모임은 즐거운 분위기 없이 서로 눈치를 보느라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최순실 사태’로 허탈한 심정이라 말할 기운도 없었다지만 경제수장이 별안간 바뀌면서 가뜩이나 어두웠던 경제전망이 더 불투명해진 탓이 컸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는 데 열정을 쏟아도 어려울 상황인데 정치상황이 어지러워 투자를 위한 경기진단은 손을 놓은 상태란다.

국회는 이런 기업인들의 우려는 뒷전으로 한 채 지난달 26일부터 사흘간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를 아예 정치청문회로 변질시켜 버렸다.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선 내년도 예산안을 정부가 편성했지만 졸속심사로 끝내버리는 전초전이 아니었는지 걱정된다. 경제를 견인하던 수출은 감소추세를 이어가고 있고 자동차,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국제경쟁력도 하락하고 있다. 이미 내상을 입은 우리 경제에 예산안 심의가 치유는커녕 악재로 작용할까 두렵다.

어두운 경제전망의 징후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난다. 9월 중 제조업 취업자가 7만6000명이나 줄었는데 지난 7월에 49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뒤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실업률도 3.6%나 돼 2005년 9월 이후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다. 청년 실업률도 9.4%로 9월 기준으로는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고다.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밝혔듯이 가계부채가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에서 서민층 생계형 대출을 중심으로 폭증하고, 가계부채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자영업자 대출이 늘고 있는 것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장기적 경기침체와 복합적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노동계는 물론이고 정치권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년도 예산을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데 쓰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16년 만에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국민의 요구처럼 협치(協治)가 절실한데 이번 20대 국회에도 과거 행태가 재연될까 걱정이다. 예산철마다 등장하는 ‘쪽지예산’의 정체도 그렇고 예산조정소위원회의 비공개 증액심사도 경제에 미칠 파장보다는 물건 흥정하듯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보좌관이었던 배석주 박사의 학위논문에 의하면 2012년도부터 2015년도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발생한 쪽지예산의 규모는 총 4조1000억원에 달했다. 예결위의 예산안 심사과정 혹은 예산안 등 조정소위 심사과정에서 증액 신설된 예산만 합쳐도 그 정도란 이야기다. 이 중엔 미처 챙기지 못한 시급한 예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역의 건설, 특정기관의 운영비나 사업예산이 다수라고 분석하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예산을 깎아 지역사업에 투입하고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복지예산을 증액하는 현捉?있었다고 한다. 쪽지예산이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기획재정부의 의견에 국회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발한 것을 보면 올해도 쪽지예산이 근절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예산안 늑장 처리 방지를 위해 도입된 ‘예산부수법안 지정제도’에서 세입법안의 지정기준이 확정되지 못한 점도 마음에 걸린다. 국회의장이 지정한 예산부수법안은 11월30일까지 각 상임위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12월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될 것이기 때문이다. 법인세·소득세 인상안 등 여야 간 이견이 큰 세법 개정안이 국회의장의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된다면 큰 혼란이 예상된다. 물론 정세균 국회의장이 예결위 의원들과 정부부처 장관들에게 예산부수법안도 의장이 지정해 처리되는 일이 없도록 각 위원회에서 합의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최악의 경우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 예산안 심의는 여러모로 시험대에 놓여 있다. 과거처럼 막장 대결로 간다면 국민들은 또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키우게 될 것이다. 민생예산안과 경제활성화 법안만큼은 꼼꼼히 따져 경제에 희망을 주는 예산심의를 기대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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